산업혁명은 노동의 가치를 바꿨고, 정보화는 지식의 가치를 바꿨다. 그리고 지금, AI는 인간의 ‘능력’ 자체의 가치를 다시 쓰고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소득과 계층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유리해지는 사회가 아니라, 어느 구조에 먼저 편입되었는지가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만드는 빈부격차는 기존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능력 격차가 아니라 접속 격차가 된다
산업사회에서 빈부격차는 주로 개인의 역량 차이로 설명됐다. 더 오래 공부한 사람,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구조였다. 물론 현실은 완전히 공정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노력과 결과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는 존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개선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AI 시대의 격차는 이 논리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 자체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에 얼마나 깊이 접속되어 있는가다. AI는 개인의 생산성을 선형적으로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특정 집단의 힘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구조다. 즉, 한 명이 AI를 잘 다루는 것보다, AI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플랫폼에 속해 있는지가 훨씬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대기업 디자이너의 차이는 실력과 경험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 디자인 툴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데이터까지 독점하는 기업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생산성 격차를 만들어낸다. 개인은 기술을 ‘사용’하지만, 기업은 기술을 증식시킨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결국 빈부격차는 실력 격차가 아니라 구조 격차가 된다. 누가 더 똑똑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강력한 알고리즘과 데이터, 인프라에 연결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이 접속권은 개인의 노력으로 획득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출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노동 소득은 정체되고, 자본 소득은 폭주한다
AI가 만드는 가장 큰 구조적 변화는 노동의 가치 하락이다. AI는 인간의 시간을 대체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동 단가를 떨어뜨린다. 문제는 이 하락이 모든 직군에서 균등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중간층부터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숙련 노동이 가장 안전한 자산이었다.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은 자동화가 어렵다고 여겨졌고 실제로도 오랫동안 보호받았다. 하지만 AI는 단순 노동뿐 아니라 판단, 분석, 기획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즉, 머리를 쓰는 일조차 기계가 더 빠르고 싸게 수행하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현상은 양극화가 아니라 삼극화다.
상위: AI를 소유하거나 설계하는 극소수
하위: AI가 대체할 수 없는 감정 노동, 육체 노동
중간: AI로 대체 가능한 사무직, 관리직, 전문직
문제는 중간층이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 계층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의 소비력과 안정성이 동시에 붕괴된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를 막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는 중간 인력을 줄일수록 수익성이 개선된다.
결과적으로 소득 구조는 이렇게 변한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의 비율은 줄고, 자본과 알고리즘으로 돈을 버는 사람의 비율은 늘어난다. 그리고 이 자본 소득은 다시 AI 투자로 재귀적으로 증폭된다. 부는 부를 낳는 것이 아니라, 부는 알고리즘을 낳고, 알고리즘은 다시 부를 낳는다.
이 구조에서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 소득의 상한선 자체가 낮아진다. 반면 AI를 소유한 집단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수익 확장성을 가진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빈부격차의 핵심이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수익 구조의 문제다.
계층 이동은 사라지고, 계층 고착이 시작된다
AI 시대의 가장 위험한 특징은 격차가 고착된다는 점이다. 기존 자본주의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했지만, 최소한 계층 이동의 통로는 열려 있었다. 교육, 창업, 취업을 통해 인생을 역전할 수 있다는 서사가 작동했다. 이 믿음이 사회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였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 통로가 급격히 좁아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AI 경쟁의 본질은 데이터와 자본의 규모 싸움이기 때문이다. 개인 창업자가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수십억 건의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 기술의 진입장벽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
또한 AI는 성공한 사람의 성공을 더욱 강화한다.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자동 마케팅, 자동 투자, 자동 콘텐츠 생산 등은 모두 상위 집단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한다. 한번 상위 구조에 편입되면, 개인의 개입 없이도 부와 영향력이 자동으로 증식된다. 반대로 하위에 머문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교육조차 평등한 기회가 아니다. AI 교육, 코딩 교육, 데이터 교육은 점점 고가의 자원이 되고 있다. 결국 부유한 집단의 자녀만이 고급 AI 환경에 노출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저급 자동화 노동으로 밀려난다. 격차는 세대 간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이것은 단순한 소득 격차가 아니라, ‘가능성의 격차’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선택지가 열려 있는지 자체가 계층에 따라 결정된다. 더 이상 같은 게임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빈부격차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구조에 속했는지의 문제다. 개인의 노력은 점점 결과를 바꾸지 못하고, 시스템에 대한 접근권이 인생을 결정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의 부작용이 아니라, 사회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앞으로의 불평등은 소득이 아니라 ‘통제권’의 문제다. 누가 알고리즘을 소유하고, 누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가. 이것이 AI 시대의 진짜 계급 구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