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사람이 먼저 탈락하는 구조가 시작됐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실함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 구조는 이 공식을 점점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성실한 사람들이 먼저 지치고, 먼저 탈락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성실함이 더 이상 구조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성실함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고, 오히려 기본값이 되었다
과거에는 성실함 자체가 경쟁력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조직의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조직의 중심이 되었고, 승진과 안정이라는 보상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에서 성실함은 특별한 장점이 아니라, 최소 조건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조직은 성실함을 전제로 움직입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애초에 시스템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성실하다는 점입니다. 성실함이 평균값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일을 맡게 되고, 더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성실함은 보상이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특히 디지털 기반 환경에서는 성실함이 쉽게 착취 구조로 전환됩니다. 성실한 사람은 메시지에 바로 답하고, 추가 업무를 거절하지 않고,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준을 묵묵히 맞춥니다. 그 결과 성실한 사람은 ‘관리하기 쉬운 인력’으로 인식됩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저항하지 않으며, 항상 일정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조직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자원입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자원은 언제든 교체 가능합니다.
결국 성실함은 보호 장치가 아니라 소모 구조로 들어갑니다. 성실한 사람은 시스템에 가장 잘 적응하지만, 동시에 가장 빨리 에너지를 소진합니다. 성실함은 더 이상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더 많이 태워야 하는 연료가 됩니다.
시스템은 성실한 사람보다 유연한 사람을 선호한다
지금의 사회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성실함이 아니라 유연함입니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맞춰 자신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 규칙보다 흐름을 읽는 사람, 한 가지 정체성에 묶이지 않는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반대로 성실한 사람은 기존 규칙을 잘 따르기 때문에, 구조 변화에 가장 늦게 반응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려고 합니다. 조직이 요구한 기준을 지키고, 계약된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더 이상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 자리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역할은 빠르게 바뀌고, 프로젝트는 단기화되며, 경력은 연속성이 사라집니다. 성실함은 안정적 구조를 전제로 할 때 의미가 있지만, 구조 자체가 불안정해지면 성실함은 오히려 리스크가 됩니다.
유연한 사람은 성실하지 않아 보여도 구조 변화에 맞춰 자신을 이동시킵니다. 필요하면 역할을 바꾸고, 필요하면 관계를 끊고, 필요하면 기준을 조정합니다. 시스템은 이런 사람을 문제적 인재가 아니라 적응형 인재로 평가합니다. 반면 성실한 사람은 기존 규칙에 묶여 있기 때문에, 구조가 바뀌어도 그 안에서 버티려 합니다. 하지만 버틴다고 구조가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결국 시스템은 성실한 사람보다 관리하기 쉬운 사람, 조정하기 쉬운 사람, 언제든 교체 가능한 사람을 선호합니다. 성실함은 안정성을 상징했지만, 지금은 경직성을 의미합니다. 구조가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서 성실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이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성실한 사람이 먼저 탈락하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성실한 사람이 탈락하는 이유는 개인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구조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준을 믿고, 그 기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설계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시스템이 그 기준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과 지표는 언제든 바뀌고, 평가 방식은 불투명하며, 기준은 계속 높아집니다. 성실한 사람은 기준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춰 더 노력합니다. 그러나 구조는 개인의 노력을 축적하지 않습니다. 어제의 성실함은 오늘의 기본값이 되고, 오늘의 성실함은 내일의 미달 기준이 됩니다. 성실함은 누적되지 않고, 소모됩니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실패의 책임은 항상 개인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구조가 바뀌어도 “더 노력했어야 했다”는 말은 계속 유지됩니다. 성실한 사람은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부족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더 많이 버티고, 더 깊이 지칩니다. 결국 탈락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탓합니다.
이 구조는 매우 불공정합니다. 시스템은 성실한 사람을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 가장 쉽게 포기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문제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구조를 흔들지 못하고, 조용히 소모됩니다. 반면 구조에 덜 순응하는 사람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만듭니다. 성실함은 질서를 유지하지만, 그 질서가 무너질 때 가장 먼저 희생됩니다.
성실한 사람이 먼저 탈락하는 사회는 개인의 도덕이 무너진 사회가 아니라, 구조가 바뀐 사회입니다. 성실함은 여전히 가치 있지만, 더 이상 보호 장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지만, 열심히 산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해지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실함이 아니라, 성실함이 작동하는 구조를 의심하는 태도입니다. 구조를 보지 못하면, 성실함은 가장 빠른 소모 방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