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 구조를 바꾸고 있다
AI는 흔히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AI는 일을 빠르게 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누가 결정권을 갖고 누가 시스템에 종속되는지를 재편하는 힘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AI를 ‘편리한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AI는 이미 권력의 위치와 사회의 작동 방식을 조용히 바꾸고 있습니다.

결정권은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사회에서 권력은 제도와 조직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임원회의에서 이루어졌고, 채용은 인사팀이 판단했으며, 금융의 리스크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부터 이 구조는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먼저 추천하고 인간이 이를 승인하는 형태가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판단의 주체가 사실상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추천 시스템이 제공하는 결과를 인간이 검토한다고 해도, 선택지는 이미 AI가 선별한 범위 안에 갇히게 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구조 안에서만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권력 이동을 의미합니다.
특히 채용, 금융, 의료, 교육 같은 분야에서는 이 변화가 더욱 분명합니다. AI는 지원자의 이력서를 분석해 적합도를 산출하고, 대출 가능 여부를 자동으로 판단하며, 학습자의 성향에 따라 교육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점점 ‘최종 책임자’로만 남고, 실질적인 판단은 시스템이 담당합니다. 권력은 명시적으로 이동하지 않지만, 실제 영향력은 이미 알고리즘 쪽으로 넘어간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권력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권력 구조는 최소한 책임 주체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AI의 결정은 종종 ‘왜 그렇게 나왔는지’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블랙박스 구조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왜 탈락했고, 왜 제한을 받았는지 알기 힘들어집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 사회적 통제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권력은 더 이상 소유가 아니라 접근성에서 나온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권력은 자본, 지위, 정보의 소유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권력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가로 이동합니다.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도, 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AI 시스템을 누가 통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중소 조직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깊이 자체가 다릅니다. 이는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개인 역시 권력 구조 안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AI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위치에 서지만, 어떤 사람은 AI가 제시하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머무릅니다. 전자는 시스템을 해석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시스템에 해석당하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는 소득이나 학력보다 훨씬 큰 격차를 만들어냅니다.
AI 시대의 권력은 명령하는 힘이 아니라, 규칙을 설계하는 힘입니다. 알고리즘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지, 데이터의 방향성을 누가 결정하는지가 곧 사회의 방향이 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민주적 절차보다는 기술 논리와 기업 논리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미 새로운 구조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개인은 점점 사용자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된다
AI는 인간을 돕는 도구로 설계되었지만, 실제로는 인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추천 알고리즘은 소비 패턴을 예측하고, 업무 자동화 시스템은 생산성을 수치화하며, 신용평가 모델은 개인의 경제적 행동을 점수로 환산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주체가 아니라 데이터 집합으로 취급됩니다.
문제는 이 관리 구조가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감시와 통제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데이터를 제공하고, 스스로 시스템에 순응합니다. 편리함과 맞춤화라는 명분 아래, 개인은 점점 더 정교한 관리 체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통제는 강압이 아니라 최적화의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이 구조에서 개인이 느끼는 가장 큰 착각은 ‘자율성’입니다. AI는 선택지를 늘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방향을 설계합니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살지, 어떤 정보에 노출될지를 이미 알고리즘이 정해줍니다. 우리는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선택당하고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개인은 주체적인 시민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객체로 재정의됩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점점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이는 기술 발전의 결과라기보다, 권력 구조가 기술을 통해 재편되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AI는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이동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너무 조용히,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설계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입니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보다, 구조를 해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