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는 노력하면 보상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더 공부하고, 더 성실하게 일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결국 결과가 따라온다는 서사입니다. 그러나 AI가 본격적으로 사회 시스템에 들어온 지금, 이 공식은 점점 작동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역량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노력의 효과는 구조에 의해 크게 제한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실패의 원인을 여전히 자신에게서만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라 기본값이 되었다
과거에는 노력 자체가 희소한 자원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오래 일하고, 남들보다 더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차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의 노력은 더 이상 차별 요소가 아닙니다. 모두가 평균 이상의 성실함을 요구받고, 최소 기준은 계속 높아집니다. 노력은 경쟁력이 아니라 입장권이 됩니다.
AI는 인간의 반복적 노동을 대체하면서, 동시에 인간에게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항상 빠르고 정확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야 합니다. 문제는 이 기준이 개인의 의지로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입니다. 시스템은 24시간 작동하고, 인간은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노력은 더 이상 우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더 큰 문제는 노력의 방향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어떤 성과가 가치 있는지는 이미 알고리즘이 정해줍니다. 개인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자신을 조정합니다. 노력은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강요가 됩니다.
결국 노력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요구되지만, 보상은 제한적으로 분배됩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성과는 상위 소수에게 집중됩니다. 이는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노력의 총량은 늘어나지만, 노력의 효용은 계속 감소합니다. 이것이 AI 시대에 사람들이 유난히 지치는 이유입니다.
보상은 실력이 아니라 포지션에서 나온다
AI 시대의 가장 큰 착각은 ‘실력이 곧 보상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입니다. 실제로는 실력보다 중요한 것이 포지션입니다. 같은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어떤 구조 안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단적으로 달라집니다. 개인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평준화되고, 시스템의 위치가 절대적 변수가 됩니다.
플랫폼 기업과 대형 조직은 이미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립니다. 이 구조 안에 있는 개인은 작은 노력으로도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구조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확산시킬 통로가 없습니다. 노력의 차이보다 구조의 차이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문제는 이 포지션이 점점 고착화된다는 점입니다. AI는 기존의 성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이미 잘 나가는 사람은 더 많은 기회를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점점 배제됩니다. 노력은 미래를 바꾸기보다 과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사회적 이동성을 심각하게 제한합니다.
이 구조에서 개인의 노력은 구조를 바꾸는 힘을 거의 가지지 못합니다. 노력은 포지션 안에서만 의미를 가집니다.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는 노력이 자산이 되지만, 주변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소모품이 됩니다. 이는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설계의 결과입니다. AI는 공정한 평가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격차를 더욱 정교하게 재생산합니다.
실패의 책임은 개인에게, 통제는 시스템에게 있다
AI 시대의 가장 불합리한 지점은 책임의 분배 방식입니다. 개인은 실패의 책임을 온전히 떠안지만, 성공의 조건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더 노력했어야 했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 어떤 선택이 유리한지는 알고리즘이 먼저 결정합니다.
채용, 승진, 노출, 평가 등 주요 경로는 대부분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관리됩니다. 인간은 최종 승인자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판단은 이미 시스템이 끝냈습니다. 개인은 결과만 받아들이고, 과정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실패의 원인은 여전히 개인의 태도나 능력으로 환원됩니다.
이 구조는 개인에게 심리적 부담을 극대화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통제 가능한 것처럼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노력은 불안 해소 수단이 되지만, 실질적인 안전망은 되지 못합니다.
결국 개인은 구조의 희생자가 아니라, 구조의 책임자로 착각하게 됩니다. 이는 시스템에 매우 유리한 서사입니다. 문제를 개인의 태도로 환원하면, 구조는 질문받지 않습니다. AI 시대의 무력감은 개인이 나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가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개인의 노력이 무력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게을러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력의 효과를 결정하는 변수가 개인에서 구조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지만, 열심히 산다는 사실만으로는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보다, 노력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일입니다. 구조를 보지 못하면, 개인은 영원히 자신만 탓하게 됩니다.